국내 게임 배틀그라운드는 다들 어떤 게임인지 아실 겁니다. 근데 이 배틀그라운드 게임의 플레이처럼 해상에서 실제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바로 <아덴만 여명작전> 당시가 바로 실제 사건인데요. 오늘은 사건 당시의 생생한 이야기를 한번 들려 드리고자 합니다. 해당 사건은 벌써 10년이 넘은 실화입니다만 최근 책으로도 출간이 되었고 아직 많이 회자되고 있는 사건입니다.
추 천 정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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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말리아 해적에게 피랍된 한국 화물선..
아덴만 여명작전은 소말리아 해적에게 피랍된 한국의 화물선 삼호 주얼리호를 구출하기 위한 작전의 이름 입니다. 지금부터 말씀드리는 내용들은 해당 작전의 초반부라고 생각을 하시고 순서대로 읽어 주시면 되겠습니다. <안 덴 만 여명작전>은 한국군이 해외에서 수행한 최초의 인질 구출 작전입니다.
- 2011년 1월 15일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한국의 화물선 삼호 주얼리호가 피랍됨.
- 삼호 주얼리호에는 한국인 선장과 선원들, 미얀마인들 등 수십명이 탑승 중이었음.
- 선원들은 해적이 접근하는 것을 보고 재빨리 선미의 저장창고로 대피했지만 3시간 15분 만에 뚫렸고 해적들은 소말리아로 삼호 주얼리호를 끌고 가기 시작함.
- 당시 대통령이었던 이명박은 더 이상의 납치를 용납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청해부대에게 해적의 소탕과 인질 구출을 명령함.
- 작전은 1차, 2차 작전으로 나뉘어서 진행되었고, 당시 삼호 주얼리호 선장이었던 석해균 선장이 영리한 기지를 발휘해 작전 시간을 버는데 큰 기여를 했다. (아덴만 여명작전의 성공에 주인공으로 부각되기도 했다.)
"엔진 오일에 물을 타라!" (1차 작전)
- 당시 삼호주얼리 선장인 석해균은 선박의 속도를 늦추려는 목적으로 해적들 몰래 "엔진오일에 물을 타라"라고 지시를 함.
- 하지만 당시 해적들 때문에 겁에 질려 있던 선원들이었기에 실행에 옮겨지는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됨.
- 행동에 옮기는 시간이 길어지자 속도를 레드 존에 놓는 방식으로 엔진 고장을 가장 했다고 함.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 석해균 선장에게 지시를 받은 기관장 정만기는 해적의 감시를 피해서 엔진오일에 물을 타는 데 성공함.
- 이때부터 선박은 정상적인 운항이 어려워짐. 엔진오일에 물이 들어가서 배가 자주 멈추고, 속도가 제대로 안 나옴.
- 배가 정상적인 운항을 못하자 해적들은 근처를 지나는 다른 선적 상선을 추가적으로 빼앗기 위해 4명이 다시 해적선을 타고 떠남. (삼호 주얼리호에 있던 해적 4명이 떠나면서 인원수 줄임)
- 근처에 대기 중이던 해군이 이것을 목격하고 헬기, 고속단정 2척을 진입시키게 됨.
- 헬기에 탑재된 중기관총으로 위협사격을 가해 해적선을 무력화 시킴.
- 자신들이 타고 온 해적선이 무력화되자 삼호주얼리호에 남아 있던 해적들이 백기를 들고 투항 의사를 표시함.
- 투항 의사를 확인한 해군은 검문검색팀을 고속단정으로 삼호주얼리호에 접근을 하려고 함.
- 삼호주얼리호에 접근하자 해적들이 갑자기 헬기, 고속단정 2척에다가 무차별적인 사격을 가함. 이때 해군 부상자가 발생되고 작전 중단. (작전은 잠시 중단되었지만 해적들의 보트, 소총 3정, 실탄 90발을 빼앗아서 전력의 절반을 무력화함.)
- 부상자는 오만의 수도에 후송되어 치료를 받았음. 안병주 소령(허리에 3발의 총탄을 맞음. 가장 부상이 심했음), 강준 하사(총알이 오른쪽 광대뼈를 스치고 지나가 찰과상.), 김원인 상사(오른쪽 허벅지에 2발의 총탄을 맞음).
- 부상자들은 모두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으나 자칫 조금이라도 총알이 다른 쪽을 향했더라면 큰일 날 뻔했다.
- 이것으로 1차 작전은 중단되었고, 성과는 해적들의 전력을 절반가량 무력화시킨 것.
배틀그라운드 실사판! 이제는 진짜 총격전이다! (2차 작전)
- 파키스탄 해군의 구축함, 미 해군의 대잠초계기가 삼호 주얼리호를 지속적으로 감시함.
- 감시하던 중 해적선 모함이 다가오는 것을 확인하고 이것을 알림.
- 이에 당시 국방구 장관이었던 김관진 장관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작전을 허락받고 명령을 하달 하기 시작함.
- 2차 작전은 부산항에서 삼호 주얼리 호와 동일한 배를 갖다 놓고 거기에서 시뮬레이션을 하고 작전을 짬.
- 2차 작전을 짜는 동안 주얼리호 근처에 헬기로 교란작전을 동시에 실행하며 해적들의 에너지를 소모 시킴.
- 이후 오만 해군의 고속정이 해적들을 포위하고 대한민국 충무공 이순신급 구축함인 최영함으로 위협 함포 사격, 헬기의 중기관총 사격으로 해적들의 시선을 끔과 동시에 본체에 직접적인 사격을 가함.
- 이와 동시에 고속단정 3척에 나눠서 udt, seal 대원들이 삼호 주얼리호 함미 우현에 접근하여 사다리로 승선을 함. (앞에서 어그로를 끌고 뒤에서 접근하는 방식의 전략)
- 사다리로 승선한 대원들의 머리에는 개인 카메라가 부착되어 있어 합동참모본부, 국방부에 실시간으로 전송되었다.
- 최영함에서 '소나타 ECM'이라는 전파 방해로 주얼리 호의 레이더, 무전기를 먹통으로 만듦.
- 일시적으로 무력화된 주얼리호의 레이더, 통신 안테나를 헬기로 접근해 사격으로 완전히 파괴시킴.
- 헬기에서 선교, 갑판에 위협사격을 가하는 동시에 최영함이 고속으로 접근하여 삼호 주얼리호를 중기관총과 저격총으로 사격을 가함. (이때 해적 1명 사망)
- 고속단정 3척에 udt, seal 공격조가 주얼리호 선미 쪽으로 진입 시작. 2개의 공격조 15명이 모두 등반에 성공함.
- 공격조 대원들은 4층 선교로 통하는 계단에서 해적 1명을 만나게 되고 즉각 사살함. 약 15분 뒤 공격조 팀은 섬광탄을 이용해서 선교를 완벽하게 장악을 함.
- 당시 조타실에 있던 석해균 선장은 해적선과 조우를 막고, 구출작전을 돕기 위해서 위험을 무릅쓰고 배를 느린 속력으로 지그재그로 돌리다가 복부에 해적의 총격을 받음.
- 선교를 장악한 공격조 대원들은 주얼리호를 구석구석 확인하기 시작함.
- 팀별로 나눠서 한 팀은 데크하우스 격실 쪽을, 다른 팀은 기관실을 맡아 수색을 함.
- 이 과정에서 해적 4명을 추가적으로 무력화 시킴. 선장실 근처에서 해적의 두목도 사살함.
- 이로써 선교 장악과 선실 내부 조사 이후에 저격수 이외에 일시 사격중지 명령이 떨어짐. (선교 쪽에 선원들 13명이 모여 있었음)
- 부상을 당한 석해균 선장은 곡 격조 1팀에 의해 응급 이송됨.
- 선장을 이송하고 다시 주얼리호에 복귀한 공격조 1팀은 해적의 마지막 소탕 작전을 시작함.
- 격렬한 총격전이 있었고, 마지막 저항을 시도하던 4명의 해적 중에서 2명이 사살되자 남은 2명은 항복을 함.
- 결국 아덴만 여명작전은 총 4번의 격렬한 총격전과 작전시간 5시간에 걸쳐 종료되었다.
작전은 성공적으로 끝난 듯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는 석해균 선장의 용기와 지혜가 있었죠. 복부에 총상을 입고 응급실로 실려간 석해균 선장은 출혈이 많아 해군 장병 3명으로부터 급하게 혈소판 수혈을 받았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선장은 복부에 AK 소총 7.62mm 총탄을 5발이나 맞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해적들이 udt, seal 대원들의 진압 작전이 시작되자 1발을 쐈고, 이것을 목격한 선원을 잡으려다가 실패로 돌아가자 1발을 더 쐈습니다. 나중에 언론에 발표되기로는 생명에 지장이 없다고 했지만 얼마 안 가서 위중한 상태로 밝혀졌었습니다. 부상자 외에는 한국인 8명, 미얀마인 11명, 인도네시아인 2명 총 21명의 선원들은 검진 결과 건강 상태가 대체로 양호한 것으로 전해 졌습니다.
석해균 선장은 오만의 대학병원에서 1차 응급수술을 받았지만 위중한 상태에 빠졌습니다. 국내 아주대학교 의과대학 이국종 교수팀이 현지로 급파되었습니다. 당시 이국종 교수가 직접 서술한 바에 따르면 석해균 선장은 이미 거의 죽어가는 사람이었으므로 한국 의료진이 가더라도 실패의 부담이 매우 컸고, 병원 내에서도 이 교수가 오만행을 결정하는 바람에 '병원 윗선에서 불같이 화를 쏟아내는'등 그야말로 사면초가의 상황이었다고 했습니다.
결국 이국종 교수는 오만에 도착해 2차 응급수술을 집도 했지만, 석해균 선장의 용태는 나아지지 않았고, 국내로 응급 이송하여 근치수술을 하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합니다. 문제는 생사가 위급한 환자였기에 일반 여객기나 군용기로는 이송이 불가했고 전문적 의료장비를 갖춘 '에어 앰뷸런스'가 있어야 했습니다. 이국종 교수팀의 김지영 코디네이터가 여기저기 전화를 돌려서 독일의 에어 앰뷸런스 회사와 접촉하는 데 성공했지만 국내 여러 정부 부처들이 미적미적 결정을 미루는 사이에 에어 앰뷸런스는 다른 환자 이송을 위해 떠나버렸습니다.
이 교수 팀은 다시 스위스의 에어 앰뷸런스 회사와 급히 접촉하여 비행기를 섭외하는 데 성공. 하지만 이 회사에서는 계약금을 바로 입금하든가 아니면 정부 차원의 지급보증을 요구했습니다. 더 이상 치료를 위해 시간을 낭비할 수 없다고 판단한 이국종 교수는 자신의 책임하에 계약서에 지급보증을 서명하고 팩스를 보내 버렸습니다. 이때 한국 정부에서는 어떤 답변도 주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당시 에어 앰뷸런스 총 이용금액은 380,000 달러로 한화로 약 4억 원이 넘는 금액이었습니다. 안 그래도 병원 내에서 눈총을 받는 와중에 일이 잘못될 경우에는 이 거액을 이국종 개인이 그대로 부담해야 할 판국이었겠죠. 이에 팀원들이 "교수님 미쳤어요?"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비용은 내가 낼 테니 지금 당장!!"의 일화 전말입니다.
이국종 교수 팀과 석해균 선장은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헬기로 아주대 병원에 이송되어 이국종 교수 집 도하에 대수술을 받고 마침내 생명을 되찾았습니다. 수술 후 의식을 회복한 석해균 선장은 이후에도 상태가 다시 악화되고 호전되고 왔다 갔다 했지만 천천히 안정세에 접어들었습니다.
이후 2011년 3월 5일, 이명박 대통령은 석해균 선장을 방문하여 석해균 선장이 걸어 나와야 <아덴만 여명작전>이 끝이 난다고 위로를 보냈습니다. 석해균 선장은 2011년 11월 4일 긴 병원생활을 끝내고 퇴원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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